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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일보]"위공(爲公) 박세일 교수를 기리며"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02-09 조회수   881

 

[조선일보]"위공(爲公) 박세일 교수를 기리며"

 

 

지난 13일 세상을 떠난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2월 그가 역저(力著)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을 펴냈을 때였다. 그 이전에는 박 교수가 주로 활동한 영역이 정치 쪽이었기 때문에 줄곧 문화부에서 일해온 기자가 접촉할 기회는 없었다.

 

박 교수가 세종시 건설은 국가 발전에 장애가 된다며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뒤 학문 연구와 국정 참여 경험을 토대로 21세기 한국이 나아갈 길을 종합적으로 제시한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은 정권 교체를 위한 국가 비전을 갈망하던 보수 우파로부터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책에 대해 서평을 쓰고 얼마 뒤 박 교수에게 연락이 와서 저녁을 함께 하고 그의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 뒤 박 교수가 저서를 내면 서평을 쓰고, 본지에 기명 칼럼을 연재할 때는 담당 데스크를 맡았으며,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있으면 인터뷰를 하는 등 이야기할 기회가 이어졌다.

박세일 교수는 자리를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중국 고전 예기(禮記)에 나오는 '천하위공(天下爲公·천하는 공공을 위한 것)'이란 문구에서 자신의 아호를 따온 데서 드러나듯 그의 사고와 활동은 공익을 위한 것이었고, 국가 발전에 초점이 맞춰졌다. 시대적·민족적 과제인 '선진화'와 '통일'을 위한 헌신을 강조하는 그의 열변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라와 사회를 향한 그의 일편단심과 열정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2016년 2월 12일 본지 인터뷰에서 "우리 외교·안보·대북 정책의 새판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며 "'평화→통일'이 아닌 '통일→평화'라는 목표를 확실히 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박세일 교수는 이론적 통찰과 현장의 실천을 겸비한 경세가(經世家)였다. 국가 목표와 정치·경제·사회·문화·국제관계의 정책 과제를 두루 제시했을 뿐 아니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철학적·역사적 기반을 탐구했다.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방대한 지적 작업을 펼치는 박 교수에 대해 진보 좌파 지식인들은 감탄과 질투를 섞어 '보수 우파의 숨은 신(神)'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박세일 교수는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펴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40대 젊은 나이로 당시 국정 지표였던 '세계화'의 밑그림을 설계하는 정책 전문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정작 국가 운영의 경륜이 무르익은 60대에는 그가 제시한 담론의 힘을 빌려 집권한 보수 우파 정부들에 외면당했다. "선진 통일이라는 국가 과제를 성취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5년"이라고 역설하던 그는 국정 운영이 자신의 생각처럼 전개되지 않는 것에 초조함을 나타냈고 결국 주위의 만류에도 정당을 만들어 직접 정치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정치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정치 도전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고 와신상담하는 가운데 병마(病魔)가 덮치는 바람에 다시 경륜을 펼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박세일 교수가 가장 존경한 인물은 율곡 이이였다. 국가의 경장(更張·개혁)을 통해 부국강병을 이루려던 율곡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조선 시대 대표적 경세가로 '만언봉사' '동호문답' '시무육조' 등 개혁론과 '성학집요' 등 학문적 업적을 함께 남긴 율곡 또한 포부를 마음껏 펴지 못하고 48세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학맥을 잇는 세력이 조선 후기에 집권해서 그의 뜻을 이어갔다. 박세일 교수가 남긴 '선진 통일'의 꿈을 성취하는 일 역시 이제 그를 기리는 후배들의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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