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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계일보] 故 박세일 교수의 "지도자의 길"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02-09 조회수   2568

 

 

故 박세일 교수의 "지도자의 길"

 

 

탁월한 경세가(經世家)였던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남긴 유작 ‘지도자의 길’은 대한민국을 이끌 새 리더십 선출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시사점이 적지 않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면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지도자의 자질과 품성,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박 교수는 이 글에서 ‘아무나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세태를 비판하면서 지도자가 갖춰야 할 능력과 덕목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지도자의 길’은 A4용지 17장 분량이다.  

◆“사심 없고 변혁 이끌 리더십 갖춰야” 

박 교수는 지도자가 갖춰야 할 4가지 능력과 덕목으로 △애민(愛民)과 수기(修己) △비전과 방략(方略) △구현(求賢)과 선청(善聽) △후사(後史)와 회향(回向)을 꼽았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지도자는 애민정신을 가져야 하고 자기수양에 앞장서야 한다”며 “애민과 수기 없이는 지도자의 길을 갈 생각을 절대 안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 사랑과 국가 사랑보다 자기 사랑과 자기가족사랑, 자기지역사랑이 앞서면 처음부터 국가지도자의 길을 걷지 않는 편이 좋다”며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철저한 자기수양을 통해 공심을 확충하고 천하위공의 정신과 애민정신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개인적 사심이 많으면 올바른 국가 비전과 방략의 선택이 어렵다”며 “사심이 많아서는 올바른 인재선택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두 번째 요건은 “공동체가 나아갈 역사적 방향과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와 해결방식에 대한 나름의 확고한 구상”이다.

 

박 교수는 “비전과 방략의 문제를 풀려면 애민만으로는 불충분하다”며 “상당한 정도의 정책 전문성, 즉 세계 흐름에 대한 상당한 통찰, 국가운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전문적 식견 등이 요구된다”고 썼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어떠한 시대인가에 대한 판단과 소신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인은 시대를 △창업(創業) 시대 △수성(守成) 시대 △경장(更張) 시대로 구분하고 각 시대별 요구하는 리더십이 다르다는 점을 역설했다. 창업 시대에는 기존 체제를 뒤엎는 개혁적 리더십이, 수성 시대에는 이해관계 집단 간 이해 조정 및 현실 관리를 잘 하는 리더십이, 경장 시대는 개혁적·변혁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봤다.

 

고인과 생전에 오랜 기간 친분을 나눠온 한 인사는 8일 “고인은 현 시점을 경장, 전환의 시대로 봤다”며 “전환기 변혁을 이끌 리더십이 이번 대선에 필요한 리더십”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경장 시대 리더십에 대해 기존 체제의 근간을 유지하되 오래된 제도와 관행을 혁파하고 기득권 구조를 재구축하는 것이라고 기술했다. 


 

◆“천하의 현명한 인재 두루 구해야” 

그는 “지도자는 최소한 세계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며 “더 나아가 공동체가 나갈 큰 비전과 그 비전을 실현시킬 큰 방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이를 위해 제대로 된 인재를 구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을 지도자가 갖춰야 할 세 번째 덕목으로 꼽았다. 그는 “세상을 경영하는 것은 지도자가 자기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며 “지도자는 최고 인재를 구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다음에는 이들 인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며 “인재들뿐 아니라 실은 국민의 이야기도 잘 들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지도자가 선청을 하려면 우선 자신이 말을 많이 하면 안 되고 자신의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구체적 방법을 소개했다. 가능한 한 의견이 다른 두 명 이상의 입장도 함께 들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도자의 마지막 덕목으로 꼽은 ‘후사’와 ‘회향’은 지도자가 이룬 성취와 영광을 국민과 역사에 돌려야 함을 의미한다.

 

박 교수는 성취는 국민과 역사에 돌리되 “실패와 반성의 책임은 자신만이 가지고 가야 한다”며 “이것이 역사의식”이라고 했다. 그는 “지도자는 역사에 큰 기여를 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해야 하며 그 결과와 성과를 나누는 데 참여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며 “일이 끝나면 빈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특히 전직 장차관과 교수 출신의 관료들에게 별도의 당부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전직 장차관이 나와서 자신의 정책 경험을 책이나 논문으로 정리하는 일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라며 “학자 출신의 장차관들이 공직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와 자신의 정책경험을 글로 정리하고 반성하는 일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그러한 현장의 지혜와 경험이 축적되고 이론적으로 정리되어야 한국적 국가경영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다”며 “우리의 이론자본이 세계 발신의 수준이 될 때 우리 한반도는 오랜 변방의 역사를 끝낼 수 있다”고 썼다. 이렇게 될 때 “선진 통일에 성공하고 세계중심국가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는 당부로 글을 맺었다.


故박세일 교수는 

“박세일 교수의 선진화 담론은 2000년대 중반 위기에 빠진 보수 세력을 구출했다. 이명박정부의 ‘선진일류국가론’도 선진화 담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며, 이 점에서 박 교수는 프랑스 문화사회학자 루시앙 골드만이 말한 바 있는 한국 보수 세력의 ‘숨은 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가 몇 년 전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에 대해 쓴 글 중 일부다.  

박 교수는 보수 진영의 대표적 이론가로 불렸지만 김 교수 글처럼 진보 진영에서도 호평이 적잖았다. 김영삼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사회복지수석으로 일하고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을 역임하면서 원칙과 합리적 노선을 견지한 덕분이다.

2005년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맡았던 그는 행정부의 세종시 이전 문제로 당시 박근혜 대표와 갈등을 빚은 끝에 의원직을 사퇴하고 탈당했다. 이후 국가 비전을 담은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을 출간한 뒤 싱크탱크 ‘한반도선진화재단’을 설립했다. 박 교수는 평소 한반도 분단 관리로는 선진국 진입이 불가능하다며 적극적인 통일 공론화를 역설했다.  

2011년 10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는 “한나라당, 민주당이 각각 보수, 진보 정당으로서 걸맞은 가치, 정책, 국가 전략을 대변하지 못하는 만큼 신보수, 신진보 세력의 등장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국민생각’을 창당하며 중도 보수 신당에 도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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