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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타자료 ] 명패 '대통령 비서실장 이원종'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05-17 조회수   2812

 

(neptune)님께서 transpac@unitel.co.kr님께 보내드리는 프리미엄조선 뉴스입니다.
(neptune)님이 전하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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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 프리미엄조선 뉴스

[전문기자 칼럼] 명패 '대통령 비서실장 이원종'

입력 : 2016.05.17 06:41

이충일 도시·교통 전문기자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을 처음 만난 것은 1993년 봄 김영삼 대통령이 충북지사이던 그를 서울시장으로 발탁한 날이었다. 청와대 담당 선배 기자로부터 "새 시장은 이원종"이란 말을 듣고 그의 서울 집으로 가장 먼저 달려가 인터뷰했다. 그는 임명장 받으러 상경해 청와대로 가는 길에 옷을 갈아입으려고 들른 참이었다. 환경·교통 같은 상투적 문답을 끝내고 돌아서는데 '삐삐'가 왔다. 부장이었다. "환경이나 교통 같은 상투적 인터뷰 말고 '인간 이원종' 휴먼 스토리를 써와라." 가판(街販)을 찍던 시절이어서 오후 5시까지는 송고해야 했다. 두 시간 남았다. 뒤이어 들이닥친 기자들에게 붙잡혀 다시 인터뷰를 마친 그에게 귀엣말을 했다. "따로 물어볼 게 많으니 차 좀 같이 타게 해달라." 그는 "그건 괜찮은데 내 옆자리는 함께 가기로 한 분이 있으니 조수석에 앉으라"고 했다. 예약자는 청주 지역 신문의 서울 주재 기자였다. 이원종은 약속을 중히 여겼다.

며칠 뒤 서울시 간부로부터 이런 얘길 들었다. 이 시장이 충북지사 때 어느 주말 비서실도 모르게 상경했는데 알고 보니 큰딸 결혼식을 치렀더라고. 그 며칠 뒤 시청 기자단과의 점심 때 "왜 그랬냐. 주변에서 다들 섭섭해했다던데"라고 물었다. 이 시장은 "공직자는 늘 처신에 신경 쓰인다. 사실 많은 분께 죄송했다"고 했다. 그는 지위를 뽐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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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이원종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이 1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약식 기자회견을 열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듬해 가을.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검찰에 소환되는 곤욕을 치른 뒤 시정(市政) 수장으로서 포괄적 책임을 지고 물러날 때 많은 공무원이 안타까워했다. "시장이, 그것도 오래전의 교량 설계까지 어떻게 책임지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평생 갚기 힘든 죄인이 됐다"며 떠났다. 핑계 대지도, 억울해하지도 않았다.

삭탈관직 4년 뒤 그는 민선 충북도지사로 재기하고 연임한다. 2006년에도 지지율 50%가 넘어 민선 3선이 확실시됐다. 그런데 중앙당 일각에서 "관선 포함해 3선이면 충분한 것 아니냐"며 압박하자 고심 끝에 불출마와 탈당을 선언한다. 퇴장의 변은 "(충북을 위해) 꿈꾸었던 일들을 거의 이루었다. 공을 이뤘다면 몸은 떠나는 것"이었다. 충북 언론은 그가 떠나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이후 10년간 성균관대 석좌교수, 한국지방세연구원과 서울연구원 이사장,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 위원장 등 주로 2선(線)에서 지원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해왔다. 두어 번 총리 물망에 올랐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서울시 공무원은 역대 최고 시장으로 이원종을 꼽고, 이원종은 고건과 구자춘을 꼽는다. 고 시장은 행정의 달인이어서, 구 시장은 책임질 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엊그제 박근혜 대통령이 이젠 칠순 중반인 그에게 비서실장을 맡겼다. 사실상 집권 말기인데도 한 일보다는 할 일이 훨씬 많은 위기의 청와대, 위기의 한국을 그가 어떻게 보좌하며 이끌지 기대되면서 걱정스럽다. 언젠가 본 그의 집 마루 장식장에는 국장·구청장·시장 등 과거의 명패가 가득했다. 그는 "나중에 봐도 부끄럼 없도록 온 힘을 다하기 위해 놓는 것"이라고 했다. 후일의 대통령 비서실장 명패 역시 후회의 느낌 없이 넣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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