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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타자료 ] 덴마크 ‘6·25 병원선 기념관'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06-27 조회수   2862

 

<글로벌 에세이>
덴마크 ‘6·25 병원선 기념관'

지난 6일 주덴마크 대사관에서 열린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호 기념관 개관식에서 테이프 커팅을 하는 참석인사들. 스벤 야트(왼쪽 두 번째) 참전용사협회 회장, 마영삼(왼쪽 네 번째) 주덴마크 대사, 엘리자베스(왼쪽 여섯 번째) 공주, 베르텔 호르데르(왼쪽 일곱 번째) 문화부 장관 등.
단상에 오른 엘리자베스 덴마크 공주가 가냘픈 손으로 징을 때렸다. 순간 깊은 울림과 부드러운 음색의 징소리가 긴 여운을 끌며 장내에 울려 퍼졌다.

덴마크 고교합창단이 덴마크 국민가요인 ‘유틀란디아’를 불렀고, 모든 참석자가 따라 부르며 식장은 흥겨운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참전용사들은 살아생전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행사에 온 가족을 데리고 나타났다.

60여 년 전, 유틀란디아호를 타고 머나먼 동방의 작은 국가로 떠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헌신적인 인류애를 실천해 세계 역사에 길이 남게 되어서일까, 참석한 가족들의 얼굴도 기쁨과 자랑스러움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6·25전쟁 당시 유엔의 지원 요청을 받은 덴마크는 인도주의와 해양 강국의 이미지가 결합된 병원선 파견이라는 가장 ‘덴마크다운 결정’을 내렸다. 유틀란디아 병원선은 999일간에 걸쳐 부상당한 유엔 병사들과 우리 국민을 전심전력을 다해 치료했다. 당대 최고의 의술과 헌신, 사랑으로 무장한 유틀란디아호 대원들의 활약상은 참으로 위대한 인간승리를 보여주었다. 전쟁터에서 실려 온 5000여 명의 부상자 중 사망자가 29명뿐이었고, 그래서 많은 유엔 병사가 전투에 임하기 전, 군번 줄에 “내가 부상당하면 유틀란디아 병원선에서 치료받게 해주시오”라는 메모를 붙여두었다고 한다.

지난 6일 열린 뜻깊은 ‘유틀란디아호 기념관’ 개관식의 하이라이트는 두 사람의 특별한 만남이었다. 바로 한국인 김주완 씨와 미국인 로버트 미드 씨가 생존한 참전용사들과 65년 만에 감격적인 해후를 한 것이다. 당시 15세 소년이던 김주완 씨는 철도사고로 왼쪽 다리가 절단된 채 방치돼 있다가 우연히 요한 프리스크 간호사의 눈에 띄어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심한 출혈 때문에 요한 간호사는 혈액형 검사도 하지 않고 소년의 혈관에 자신의 혈관을 연결했다. 기념식 다음 날, 요한 간호사의 무덤을 찾은 김 씨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소주잔을 올리고 한국식 절을 올렸다. 자식이 없었던 요한 간호사는 평소 김 씨를 떠올리면서 ‘이 세상에서 유일한 내 피붙이’라고 했었다.

또 하나는 6·25전쟁 당시 미국 해병대 소대장으로 서부전선 전투에서 부상당했으나 병원선 헬기에 구조돼 유틀란디아호에서 치료를 받은 로버트 미드 씨와의 만남이었다. 현재 미국에 사는 미드 중위는 개관식에 간절히 참석하고 싶었지만,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해 영상을 통해 참전용사들과 만났다. 화면 속에서나마 서로의 옛 모습을 확인해보려는 듯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서로 손을 내밀어 잡으려 했다.

유엔 병사만 치료하라는 명령을 받은 유틀란디아호는 한국인 민간인도 치료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유엔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하고, 또다시 요청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이들이 돌본 한국인 민간인 숫자는 수만 명에 이르고, 앞서 얘기한 김 씨도 그중 한 명이다.

필자는 덴마크에 부임하자마자 유틀란디아 참전용사들을 만났다. 총인원 630명 중 생존자는 겨우 16명뿐. 이마저도 대부분 90을 넘긴 초고령자이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한국과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한 이분들의 업적이 잊혀서는 안 되겠기에 ‘유틀란디아호 기념관’을 설립하기로 했다. 뜻이 좋으면 사람들이 모이는 법. 참전용사들과 유가족들이 고이 간직해오던 유물을 들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대사관 직원들이 덴마크 적십자사 창고에서 무수한 박스를 하나하나 열어가면서 유물을 모았다. 덴마크 공대(DTU)는 첨단 3D 프린터 기술로 유틀란디아호 모형을 선뜻 제작해주었다.

이런 저간의 노력으로 유틀란디아호 기념관이 지난 현충일에 개관할 수 있었고, 앞으로 후세대들을 위한 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 큰 건물일수록 튼튼한 버팀대가 필요한 것처럼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믿음과 신뢰와 사랑이라는 굳건한 버팀대가 필요하다. 유틀란디아호 기념관이 그러한 버팀대이며 한국과 덴마크 양국이 지속적인 유대와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열어가는 데 큰 몫을 할 것이다.



◇마영삼(59) △제15회 외무고시 △주미국 2등서기관 △주유엔 1등서기관 △인권사회과장 △국무총리 비서실 파견 △주팔레스타인대표사무소 초대 대표 △아프리카중동국장 △주이스라엘 대사 △공공외교대사 △주덴마크 대사

기사 게재 일자 201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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