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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박세일 선진통일전략 ] 지도자의 길 - 대학을 끝내면서 (박세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10-14 조회수   3911

安民學 序

지도자의 길

박세일

 

 

어는 공동체이든 그 공동체가 발전하려면 그 공동체의 지도자가 훌륭하여야 한다. 훌륭한 지도자 없이 발전하는 공동체는 없다. 공동체 구성원의 질과 수준도 물론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공동체발전에는 지도자의 역할이 있고 구성원의 역할이 있다. 각각의 사명과 역할이 다르다. 그러면 훌륭한 지도자란 어떠한 사람을 말하는가? 어떠한 자질과 능력과 덕성을 가져야 훌륭한 지도자라 할 수 있는가? 표현을 조금 바꾸면 개인의 차원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어떠한 노력을 하여야 하는가? 어떠한 자질과 능력과 덕성을 키우려 노력하여야 하는가?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공동체의 발전을 위하여 어떠한 자질과 능력과 덕성을 가진 지도자들을 키워 내야 하는가? 이것이 사실은 安民學 내지 經世學(statecraft)의 제1과제이다.

 

安民學 내지 經世學이란 어떻게 공동체를 관리하고 경영하여야 공동체를 발전시키고 공동체구성원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이론이다. 이 이론이 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제1과제가 안민을 할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란 어떠한 지도자를 의미하고 그러한 지도자들을 만들려면 개인이든 사회든 어떠한 노력을 하여야 하는가? 라는 문제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안민학을 帝王學이라고도 하였다. 훌륭한 임금,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어려가지 어려운 문제가 등장하는 주 이유의 하나는 정치지도자와 행정지도자들이 경세학 내지 지도자학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제대로 하지 않고, 불충분한 상황에서 정치와 나라운영의 큰 책무를 맡는 경우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되려면 지도자가 될 준비를 하여야 한다. 지도자의 덕목과 자질을 준비하여야 한다. 아무나 지도자의 위치를 탐하여서는 안 된다. 지도자란 아무나 되는 것도 아니고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큰 뜻을 세우고 지도자의 덕목과 자질을 키우기 위한 각고의 노력과 준비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본인도 성공하고 시대도 성공시킬 수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에 지도자가 되고 싶은 욕심을 많은데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과 덕성을 키우는 노력은 많이 부족하다. 그러니 지도자가 되고도 지도자의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사명이 무엇인지? 지도자의 기본자세와 덕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등등에 대하여 전혀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 안민도 경세도 되지 않는다.

 

지도자의 길을 가려면 적어도 4가지 능력과 덕목을 갖추어야 하다. 이 4가지를 갖추기 위한 뼈를 까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첫째는 <愛民과 修己>이다 무엇보다 먼저 지도자는 애민정신을 가져야 하고 자기수양에 앞장서야 한다. 자기수양의 핵심을 私慾과 小我心을 줄이는 것이고 公心과 天下心(천하와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마음)을 확충하는 것이다. 公心이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기본자질이다. 이것을 강조한 책이 바로 수기치인의 길을 자세히 가르치는 <大學>이다. 그래서 애민과 수기 없이는 지도자의 길을 갈 생각을 절대 안 하는 것이 좋다. 본인은 물론 모두를 위해서이다.

 

둘째는 <비전과 方略>이다. 지도자는 최소한 세계흐름과 국정운영의 <大綱>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공동체가 나갈 <큰 비전>과 그 비전을 실현시킬 <큰 방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니 준비하여야 한다. 안민과 경세의 꿈과 방략을 가지지 않고, 치열한 준비도 없이 고민도 없이 안민하겠다고 경세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역사와 국민에 대하여 대단히 무례한 일이다. 아니 죄악이다.

 

셋째는 <求賢과 善聽>이다. 안민하는 경세를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천하의 현명한 인재들을 많이 구하여야 한다. 求賢이다. 세상을 경영하는 것은 지도자가 자기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천하의 최고인재의 머리로 하는 안민하고 경세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는 최고인재를 구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 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들 인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善聽이다. 인재들뿐 아니라 실은 국민들의 이야기도 잘 들어야 한다. 옛말에는 임금은 시장에서 나무꾼이 하는 이야기도 헛듣지 말고 선청하여야 하다고 하였다.

 

넷째는 <後史와 回向>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자신의 시대가 끝나고 올 다음 시대를 배려하고 준비하여야 한다. 그것이 後史이다. 그것이 역사의식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알아야 하고 다음 세대가 해야 할 일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가 성공하기 위하여 지금 준비하고 도와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여야 한다. 차세대의 인재를 키우는 것 차세대의 정책개발을 돕는 것 등이 모두 후사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회향이다. 자신이 이룩한 성과를 국민들과 역사에 회향하여야하다. 이 시대 자신이 이룬 공을 함께 노력한 공직자 국민 그리고 오늘이 있게끔 만든 과거의 역사의 주역들에게 돌려야 한다. 그리고 본인은 빈 손으로 빈 마음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야 한다. 아니 표표히 떠나야 한다. 이것이 大人의 풍모이다. 큰 지도자는 풍모이다..

 

1: 愛民과 修己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공동체와 공동체구성원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야 하다. 지도자의 길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사업의 길이 아니다. 공동체를 위한 사업이기 때문에 天下爲公(천하는 모두를 위한 것이다)의 자세와 구성원에 대한 愛民精神이 기본이다. 환언하면 천하 즉 국가경영은 소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한 것임을 전제하는 국민사랑과 국가사랑이 있어야 한다. 국민사랑과 국가사랑보다 자기사랑이 앞서면, 자기가족사랑 자기지역사랑이 앞서면, 처음부터 국가지도자의 길을 걷지 않는 편이 좋다. 그래서 지도자의 기본 덕목은 公心이다. 나와 천하를 둘로 보지 않는 마음이다. 천하의 이익을 내 이익으로 보는 마음이다.

 

물론 날 때부터 공심이 많아 애국심과 애민정신이 많은 사람도 있다. 하늘로부터 받은 氣質之性이 그러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철저한 자기수양을 통하여 공심을 확충하고 천하위공의 정신과 애민정신을 키워 나가야 한다.

 

그러면 수기 즉 자기수양이란 무엇인가? 수양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지도자에게 특히 수양이 필요하고 중요한가? 그리고 어떻게 수양하여야 하는가? 이 네 가지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첫째는 수양이란 무엇인가? 수양이란 한마디로 私心과 사욕을 줄이고 公心과 天下心을 내는 것이다. 소아의 틀을 벗어나 천하와 자연과 내가--이 우주와 내가--하나가 되는 마음을 가지는 공부이다. 대학에서는 이를 본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품 속에 있는 밝은 덕(공심과 천하심) 을 밝히는 과정이라고 하였다. 明明德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마음속에 본래 공심과 천하심--천하와 자기를 하나로 보는 마음---이 있는데 평시에 사욕과 사심---천하와 자기를 둘로 보는 마음---으로 가려서 잘 들어나지 안았으나, 이제 수양을 통하여 사심과 사욕을 줄여나가면 공심과 天下心 내지 大我心이 저절로 들어 난다는 것이다. 마침 구름에 가려있던 해와 달이 구름이 사라지면 그 밝은 빛이 저절로 들어나는 것과 같이 수양을 하면 저절로 공심과 대아심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둘째 수양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두 가지가 아닐까? 하나는

올바른 死生觀을 세우는 일이다. 지도자는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하여 견해가 정리되어있어야 한다. 죽는 것을 크게 싫어하고 사는 것을 크게 좋아하면 사욕을 벗어나기 어렵고 공심과 대아심을 가지기 어렵다. 명덕 속에 있는 仁義禮智 중에서 특히 義를 세우기 어렵다. 그래서 지도자는 死生에 대하여 不動心을 가져야 한다. 죽음과 삶의 문제보다 더 소중히 하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천하위공을 실천할 수 있다.

 

수양이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이미 앞에서 이야기하였지만 자기 본성 속에서 公心(天下之心)을 확충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선 물론 남녀음식의 私心(사욕)을 줄여나가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本然之性(본성)으로서 인의예지의 양심 혹은 명덕이 있으니 지도자가 될 인재는 이를 밝히고 확충하기 위하여 수양을 하는 것이다. 국가이든 조직이든 모두가 개인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그 경영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을 천하지심이 즉 公心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천하지심은 천하와 자기를 둘로 보지 않고 천하의 마음을 자기마음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천하지심은 백성지심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백성의 마음으로 자기마음을 삼아 백성의 입장에서판단하고 생각하고 사물에 임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백성의 마음과 다른 사심과 사욕을 기준으로 하면 애민과 공심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셋째: 왜 지도자에게는 수양이 특히 중요하고 필요한가? 일반인들에게도 애민과 자기수양은 좋은 일 아닌가? 바람직한 일 아닌가? 그런데 특히 지도자가 될 사람들에게 애민과 수양을 더 많이 요구하고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도자는 반드시 애민하고 수기를 하여야 할 두 가지 이유가 추가로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지도자가 국가비전과 방략을 바로 세우려면 지도자의 마음 자체가 공명정대한 공심과 대아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 사심이 많으면 올바른 국가비전과 방략의 선택이 어렵다. 세상의 흐름을 올바로 읽고 국가가 나갈 대략을 잡으려면 지도자의 마음자체가 청천백일처럼 공명정대하고 백성을 자기처럼 아끼는 애민정신을 가져야 한다. 愛民과 公心으로 공동체 비전과 방략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이유는 올바른 인재를 찾으려면 사심이-- 개인적 고려 나 개인적 선호가---작을수록 좋다. 올바른 인재를 찾아 적절한 位를 주고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면 ---즉 求賢하고 善聽을 하려면-- 사심이 적어야 한다. 애민과 공심이 약하고 사심이 많으면 우선 사람을 올바로 볼 수 없다. 知人을 제대로 할 수 없다. 正見은 無私에서 나온다. 사심이 많아서는 올바른 인재선택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설혹 賢臣을 우연히 구했다고 하여도 사심이 많으면 현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선청할 수 없다. 사심이 많으면 正論과 邪論을 올바로 판단하여 제대로 취사선택할 수 없다. 그래서 <대학>에서 지도자 자신의 마음에 있는 明德을 밝히는 것--공심과 대아심을 확충하는 것--이 지도자학의 제 1의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그러면 지도자는 도대체 수양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어떻게 하여 明明德하고 애민정신과 공심을 환언하면 천하지심을 키울 것인가? 어떠한 수기의 길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자. 그 동안 동양의 종교와 철학에서는 많은 가르침이 있고 다양한 길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요약하여 보면 모든 자기수양의 과정은 3단계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본다.

 

첫째는 <고요한 마음>(靜心)을 가지는 것이다. 우선 마음을 고요히 하여야 한다. 그래야 사심이 적어지고 천하지심 즉 공심이 커진다. 마음이 사심에 흔들려서는 사물이 제대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바람이 부는 호수에는 달 모양이 물위에 제대로 비추이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선 고요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자기수양의 제 1단계이다. 이 고요한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이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호흡에 집중하던지 마음내면의 대상임에 집중하던지 하여야 한다. 그러면 마음의 집중의 결과로 고요한 마음에 도달 할 수 있다. 유교에서는 이를 居敬이라고 하였고 불교에서 사마타 즉 禪定이라고 불러왔다.

 

둘째는 고요한 마음을 얻은 다음에는 그 고요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마음의 변화를 관하고 주변 사물의 이치를 살피는 것이다. 자기 마음의 변화를 관하게 되면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음식남녀의 마음인 사욕의 움직임도, 인의예지의 마음인 공심의 움직임도 모두 살필 수 있다. 그래서 私를 버리고 公을 확충하는 자기수양을 할 수 있다. 자기의 사욕과 사심을 줄이고 자기의 오랜 기질--성격 습관 등--을 인의예지의 방향으로--소위 인간의 본성을 확충하는 방향으로---바꾸어 나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대학이 주장하는 明德을 밝히는 과정이다.

 

그리고 동시에 마음이 고요하여 천하공심을 가져야 세상 사물의 이치--예컨대 국가의 흥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亂世와 治世가 어떻게 갈라지는지 등등--를 제대로 살필 수 있다. 그래야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 즉 큰 지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자기 자신의 내면과 밖의 세상에 대한 <통찰의 과정>을 通察智를 얻은 과정을 유교에서는 窮理 혹은 格物致知라고 하였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위빠사나 즉 正見 혹은 智慧(혹은 般若)라고 불러왔다.

 

세 번째는 이렇게 고요한 마음으로 이치를 살펴 얻은 자기에 대한 이해와 지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해와 지혜를 애민의 마음--대자대비의 마음--을 가지고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고 역사의 현장 속에서 열심히 실천궁행하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이것을 力行이라고 하고 불교에선 正精進이라고 한다. 깨달은 바는 반드시 실천되어야 한다. 지행합일이어야 한다. 지도자가 해야 할 이상의 3가지 수행을 이율곡선생은 (1) 居敬 (2) 窮理 (3) 力行으로 정리하고 선비의 필생의 사업이라고 하셨다.

 

 

2: 비전과 방략

 

지도자는 그가 지도하는 그 공동체가 나아갈 역사적 방향,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와 해결방식에 대한 나름의 확고한 구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를 풀려면 다시 강조하지만 우선 백성의 입장에서 천하의 일을 볼 수 있는 以天下觀天下의 마음이 기본이 된다. 그러나 이 비전과 방략의 문제를 풀려면 愛民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상당한 정도의 정책전문성 즉 세계흐름에 대한 상당한 통찰, 국가운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전문적 식견 등이 요구된다.

 

지도자가 큰 비전과 큰 방략을 세우려면 가장 먼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어떠한 시대인가에 대한 판단과 소신이 있어야 한다. 우선 시대에 대한 자기판단이 있어야 하다. <시대의 정신>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읽음이 있어야 하다. 지금 이 시대는 어떠한 시대인가? 이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에 대한 판단이 서야, 이 시대의 국가비전은 무엇이어야 하고 주요한 국정과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의 문제가 풀린다. 그리고 이들 문제를 풀기 위하여 어떠한 국가조직이 필요하고 어떠한 인재들을 모아 힘을 합쳐야 하는가? 등등의 문제가 풀려 나간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일반적으로 시대구분에는 3가지가 있다. 첫째는 創業의 시대 둘째는 守成의 시대 셋째는 更張의 시대이다. 지도자가 공동체의 비전과 방략을 세우려면 그 공동체--국가공동체--가 지금 창업의 단계에 있는가? 수성의 단계에 있는가? 아니면 경장(개혁)의 단계에 있는가? 를 먼저 판단하여야 한다. 거기에 따라 국가비전과 방략이 달라진다. 창업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혁명의 단계이다. 달려가던 차를 세우고 엔진과 타이어를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수성은 이미 창업된 역사를 잘 지키고 유지하고 관리하는 단계이다. 차를 세워놓고 가스를 넣고 기름을 칠하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 경장은 창업된 역사가 시간이 감에 따라 낡고 부패하고 기득권화되는 것을 새롭게 고치고 개혁하는 단계이다. 달려가는 차 속에서 엔진과 타이어를 바꾸는 것이다. 지금 국가공동체가 처하여 있는 역사발전의 단계가 창업이냐 수성이냐 경장이냐에 따라 국가비전과 방략이 달라진다. 국정의 어젠다도 정책적 주장도 국민적 설득도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리더십의 형식과 내용이 달라진다.

 

창업의 시대에 요구되는 리더십은 革命的 리더십(revolutionary leadership)이다 기존 체제를 뒤 엎는 리더십이다. 수성의 시대에 요구되는 리더십은 去來的 리더십(transactional leadership)이다. 이해관계 집단들의 이해를 잘 조정하고, 이익의 교환을 잘 주선하는 그래서 현실을 잘 관리하는 리더십이다. 그리고 경장시대의 리더십은 改革的 變革的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 이다. 기존체제의 근간은 유지하되 그 동안 오래되고 낡은 제도와 관행을 혁파하고 기득권구조를 재구축하는 리더십이 개혁적 변혁적 리더십이다. 이와 같이 시대의 성격에 따라 요구되는 리더십이 크게 다르다. 그래서 지도자는 시대를 잘 보고 지금이 창업의 시대인가 수성의 시대인가 경장의 시대인가를 판단하여야 한다. 그리고 지금 되는 리더십이 혁명적 리더십인가 거래적 리더십인가 개혁적 리더십인가를 잘 읽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team이 시대의 요구에 맞는 리더십인가를 점검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리더십이 되도록 철저히 준비하여야 한다.

 

다음은 시대가 창업의 시대인가 수성의 시대인가 경장의 시대인가 와는 관련 없이 어느 국가공동체이든 반드시 풀어야 할 4가지 기본과제가 있다. 지도자는 이들 국가과제의 중요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져야 하고 그 과제해결의 큰 방략을 준비하여야 한다.

 

첫째는 富民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길에서 가장 먼저 할 것은 부민이다.(汎治國之道 必先富民: 管子) 부민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들에게 생업을 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明君 制民之産: 맹자) 또한 모든 국민들이 어느 수준의 떳떳한 자산을 가져야 떳떳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생업을 마련해 줄 뿐 아니라 그 생업이 떳떳한 재산을 만들 수 있는 생업이 되도록 해 주어야 한다.(制民恒産: 율곡)

 

이와 함께 그 사회에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겐 별도의 관심을 두어야 한다. 환과고독(鰥寡孤獨--홀아비 과부 부모없는 아이, 자식없는 노인--에 대한 나라의 救恤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도자가 될 사람은 어떻게 하여 경제발전을 이루고 국민들에게 마땅한 그리고 떳떳한 생업을 제공할 것인가 고민해야 하고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 대하여 구휼의 방략을 세워야 한다. 경제발전의 구상없이 지도자가 되려면 안 된다.

 

둘째는 興敎이다. 모든 국민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교육을 대대적으로 진작해야 한다. 한마디로 교육입국이다 교육은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최고의 지식과 기술을 가르쳐 사회적 분업체계 속에서 바람직한 생산적인 생업을 찾도록 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이 살아가는 道를 가르치는 것이다. 인간이 禽獸와 다른 것은 인륜--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 등--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孝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수사회가 아니고 인간사회를 만들려면 교육에서는 반드시 이 인륜을 가르쳐야 한다.(敎以人倫 맹자) 따라서 지도자는 흥교 즉 교육개혁을 고민해야 하고 그 대략의 방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셋째는 紀綱이다 국가에는 기강이 있어야 한다. 옛날 선비들은 기강은 국가의 원기라고 하였다. 나라가 나라다우려면 반드시 기강이 서야 한다. 기강이 서려면 두 가지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하나는 信賞必罰이 정착되어야 한다. 공정한 상벌 없이 그 사회에 기강은 서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유능하고 유덕한 인재가 윗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무능하고 무도한 사람들이 윗자리에 앉아 있으면 안 된다. 어진이가 위에 있어야 하지 간사한 자들이 위에 있어서는 그 나라에 정신적 도덕적 기강이 서지 않는다. 한마디로 정신적 리더십 도덕적 리더십 없이 한 나라에 기강은 서지 않는다. 그런데 신상필벌의 법치를 세우는 일도 그리고 유능하고 유덕한 인재를 윗자리에 앉히는 일도 모두 사실은 최고지도자가 無私하여야 가능한 일이다. 사심이 많으면 해내지 못 한다. 여하튼 지도자가 될 사람은 어떻게 공정한 상벌체계를 세우고 현명한 인재들을 국가의 윗자리에 모실 것인가 그래서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울 것인가 그 방책을 고민하고 방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넷째는 外治이다. 쉽게 이야기 하면 國防과 外交이다. 나라의 국가주권 국민주권을 지키려면 국방이 튼튼하여야 하고 외교가 유능하여야 한다. 국방과 외교는 국가의 독립성과 자주성의 기본전제가 된다. 국가공동체성 유지와 발전의 필수조건이다. 어떻게 한 나라가 처하여 있는 지정학적 지경학적 비교우위를 잘 활용하여 세계중심국가의 역할을 할 것인가. 천하국가의 역할을 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튼튼한 국방전략과 유능한 외교전략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일국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을 반드시 국방과 외교의 대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국가지도자는 최소한 지금의 시대가 창업의 시대인가? 수성의 시대인가? 경장이 요구되는 시대인가? 를 정확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거기에 따라 최고지도자의 리더십이 달라져야 하고, 국정운영의 우선순위가 달라져야 하고, 인재구성과 조직체계가 달아져야 하다. 이와 함께 4가지 기본적 국정최고과제--富民 興敎 紀綱 外治--에 대한 자기철학과 소신과 정책구상이 있어야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세계흐름에 대한 파악 국정운영의 경륜 그리고 개별 국정과제에 대한 정책전문성이 대단히 높은 수준으로 요구되는 것 같다. 과연 그것이 바람직하지만 가능한가?

 

물론 세종대왕처럼 애민정신을 가지면서도 깊은 사색과 독서를 통하여 국정운영의 전문적 식견에서도 신하들 못지않은 아니 그이상의 탁월한 수준의 경륜을 가진 지도자라면 문제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도자는 국정운영의 세세한 부분에 대한 전문성은 크게 부족한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세계의 흐름을 읽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하여 지도자는 두 가지 노력을 하여야 한다. 첫째는 천하의 대략을 통찰하는 안목을 스스로 기르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둘째는 천하의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 그들의 경륜과 지혜를 활용하여야 한다.

 

우선 지도자 스스로 <천하의 대략>을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우선 지도자는 국정운영의 상세한 것을 알기도 어렵지만 알 필요도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정운영 <전체의 대략>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지금이 어떤 시대이고 시대정신이 무엇이고 바람직한 국가비전과 전략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큰 그림>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있어야 한다. 공동체가 당면하고 있는 주요문제--富民 興敎 紀綱---의 방략과 공동체 밖에서 있어나고 있는 세계 주요변화에 대한 대응전략--外治--대한 大綱도 반드시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지도자는 이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대략의 식견과 철학과 소신>은 반드시 가져야 한다. 그래야 함께 일할 staff들이 제출하는 정책건의 당부를 구별할 안목이 생긴다. 상세한 것은 필요 없어도 큰 대략은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안 되는 지도자는 그래서 국가경영의 기본에 대한 이해가 盲目이면, 지도자의 길을 안 걷은 것이 좋다. 그래서 지도자는 미리 미리 공부를 하여야 한다. 적어도 국가비전과 국가전략, 국정운영과 국가정책의 큰 방향과 대략을 이해하는 공부는 애민의 마음으로 열심히 하여야 한다.

 

적어도 지도자를 희망하는 사람은 두 가지를 자신에게 불어봐야 한다. 첫째 나는 왜 정치를 하려는가? 나는 왜 지도자가 되려 하는가? 둘째는 나는 어떠한 정치를 하려 하는가? 나는 어떠한 지도자가 되려하는가? 내가 성취하고 싶은 정치는 어떤 정치인가? 내가 세우려는 나라는 어떠한 비전과 전략은 가진 나라인가? 이 두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답을 얻는 후 지도자의 길을, 즉 정치의 길을 걸어야 한다.

 

지도자의 첫 번째 과제는 自己學習이라면 두 번째 과제는 천하의 최고 인재를 모으는 일이다. 앞에서 지도자가 되려면 국가비전과 전략에 대한 대략적 이해와 파악은 기본이라고 하였다. 상세한 것은 모를 수 있다. 아니 지도자가 다 알 필요도 없다. 그러나 국정운영에는 대략만 가지고 안 된다. 상세하고 구체적인 것이 필요하다. 이 상세하고 구체적인 것을 보충하고 보완하는 일이 실은 최고 인재들의 역할이다. 그래서 천하의 최고인재를 모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지도자가 할 두 번째 과제이다.

 

국정운영은 본래가 지도자 혼자가 자기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천하의 머리로 하는 것이다.(集天下之智 決天下之事: 율곡)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러려면 천하의 인재를 모아야 하고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잘 들어야 하다. 천하의 인재를 모으되 반드시 <스승같은 인재>를 모아야 한다. 임금의 말만 잘 듣는 학생 같은 인재를 모아서는 천하의 머리를 모아 국정운영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맹자가 임금주위에선 스승 같은 사람 즉 자기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많이 둔 나라는 발전하고 학생 같은 사람 즉 자기가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을 신하로 많이 둔 나라는 어렵다고 하였다.(맹자 公孫丑章句 下)

 

 

3: 求賢과 善聽

 

우리는 앞에서 천하의 최고의 인재를 모아, 즉 求賢하여, 천하의 일을 맡기는 것이 지도자의 길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구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천하의 최고 인재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우선 최고의 인재인지 아닌지 어떻게 식별할 것인가? 이것이 역사적으로 지도자학의 핵심주제의 하나이다. 그래서 예부터 임금은 두 가지를 잘 하여야 한다고 했다 하나는 知人이고 다른 하나는 安民이다. 안민은 백성를 편안하게 해주고자 하는 애민의 마음, 즉 仁의 마음이고, 지인은 사람을 바르게 살펴 그 됨됨이를 바로 아는 일이다. 智의 마음이다. 사람을 올바로 알고 판단하여야, 우선 지도자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어야 적재적소에 맞게 인재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부터 지도자학에서 지인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삼아 왔다.

 

우선 사람을 어떻게 보고 판단할 것인가? 知人之法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이를 위해선 堯임금이 舜임금을 어떻게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하였는가 그 과정을 보면 큰 참고가 된다. 요임금과 같은 聖人의 知人之法에는 3가지 특징이 보인다. 첫째는 상대를 충분히 알면서도 때를 기다리며 심사숙고하였다 둘째는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먼저 의견을 말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의견을 잘 들었다 즉 선청하였다. 셋째는 사람 됨됨이를 공적으로 사적으로 시험하여 보았다.(오랫동안 公務를 맡겨서 治國을 어떻게 하는가? 그리고 자신의 두 딸을 시집보내 순임금이 어떻게 齊家를 하는가를 살펴 보았다) 대단히 신중한 지인법이다. 그러나 천하를 맡길 사람 임금을 찾는 일이니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음 공자의 지인지법은 어떠하였는가? 공자는 지도자의 지인지법을 이야기하면서 우선 지도자 스스로가 公而無私 明而不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앞에서도 지적하였지만 지도자가 수양을 하여 公하고 明하지 않으면 사물을 바르게 보고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인지법을 이야기하면서도 명군이 아니면 바로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눈 밝은 공평무사한 明君의 중요성은 전제로 하면서 공자는 3가지 지인지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그 사람의 행하는 바를 보아라(視) 말과 행실을 보라는 것이다. 둘째는 그 사람이 그렇게 행하는 이유와 까닭을 살펴라(觀). 그가 이익을 위해서 하는가? 의리를 위해서 하는가? 셋째는 그 사람이 편안하게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 어는 때 편안하게 느끼는지를 꼼꼼히 살펴라(察) 그 사람이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라. 그러면 그 사람의 恒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이익을 좋아하는 소인인지 대의를 소중히 하는 군자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이상의 3가지 기준을 제시하면서 모든 사람이 좋아해도 혹은 모든 사람이 싫어해도 쉽게 판단하지 말고 실제를 잘 살펴라. 많은 사람들이 지지한다고 하더라고 선한 사람들이 많이 지지하는지 不善한 사람들이 지지하는지 자세히 살펴라. 공자께서는 이렇게 신중한 지인지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儒家에서 나라가 부흥하려면 인재를 알아보는 눈 밝은 明君과 유능하고 현명한 신하 즉 賢臣이 만나야함을 강조하여 왔다. 정약용 선생은 이것을 風雲之會라고 하였다. 바람과 구름이 만나야 많은 변화와 조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은 현실국가운영의 어려움의 대부분은--亂世의 주요원인은-- 이 양자의 만남이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이와 관련 두 가지 지적할 점이 있다. 첫째는 명군이 현신을 찾는 데는 道가 있다는 점이다. 명군은 모든 정성을 다하고 최고의 예의를 갖추어 <스승으로의 현신>을 찾아야 한다. 보통 三顧草廬 등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신하될 사람이 자기존대하고 오만해서가 아니다. 임금의 정성이 그리고 신뢰가 그 수준이 아니면 국가의 어려운 과제를 함께 풀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신은 명군이 정성과 예를 다하고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요약하면 명군은 스승으로서의 현신을 찾는 데는 지극한 도가 있고 그 도를 따라--예와 의를 따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에서 지적하였지만 맹자는 임금이 스승들을 신하로 모시면 그 나라는 잘된다고 하였다.

 

둘째는 현신이 명군을 모시는 데에도 道가 있다. 공자께선 올바른 신하는 도로서 임금을 섬긴다(以道事君)라고 하고, 도로서 섬길 수 없으면 물러나야 한다(不可則止)고 하셨다. 신하가 임금을 존경하고 모시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도에 맞도록 임금을 모시고 인도하는 것은 현신이 아니면 못하는 법이다. 그러면 도를 가지고 임금을 모신다는 것은 무엇일까? 성공한 천하국가 즉 富民德國을 만드는 원리와 이치에 맞게 국정운영을 조언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를 가지고 임금을 모실 수 있으면 모시고, 도를 가지고 모시기 어려우면 떠나는 것이 현신의 도리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신하는 나가기가 어렵고 물러서기가 쉬워야 하다고 그래야 그 나라의 官의 질서가 바로 선다고 하셨다.

 

다음은 지도자는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는 善聽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자. 지도자가 선청을 하려면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는 우선 자신이 말을 많이 하면 안 된다. 자신의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면 안 된다. 이 점은 특히 韓非子가 강조한 점이다. 지도자가 입장을 미리 밝히면 신하들의 의견이 이를 따라 오는 경향이 생긴다. 신하들의 진정한 충언을 들을 수 없다. 그래서 신하들의 의견을 선청하면서 메모하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그를 위하여 메모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는 가능한 의견을 달리하는 둘 이상의 입장을 함께 들어야 한다. 선청의 두 번째 룰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이해의 차이에서도 달라지지만 가지고 있는 정보 set이 달라서 견해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천하의 지혜를 모으려면 다양한 정보 set을 접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의견을 동시에 듣는 것이 중요한 선청의 길이다.

 

4: 後史와 回向

마지막으로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덕목은 후사와 회향이다 후사란 자신이 물러난 다음에 올 시대 그리고 세대를 위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역사의 발전은 연속적이다. 따라서 오늘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다음에 올 역사도 중요하다. 오늘의 역사뿐 아니라 미래의 역사까지도 성공시켜야 명실공히 천하국가 부민덕국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진정으로 애민하는 공심을 가진 지도자라면 다음에 올 시대를 위하여 두 가지 준비를 한다.

 

하나는 차세대 인재를 키운다. 차세대 지도자를 키워야 한다. <大學衍義>를 쓴 眞德秀는 “天子는 한 시대의 인재들 길러내는 최고 책임자(宗主)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각자 장점을 길러주고 서로 배우고 익히도록 하면 백관은 모두 현능해 질 것이고 일마다 그 마땅한 때를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훌륭한 천자라면 이러한 인재양성의 노력은 당대에 끝나지 않고 다음 시대와 다음에 올 세대로 연계될 수 있어야 한다. 당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시대 다음세대를 위하여 인재를 기르는 노력이 지금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後史의 두 번째 과제는 다음 시대가 필요로 할 정책을 미리 예측하고 오늘의 정책을 정할 때 이를 고려하는 것이다. 필요하면 다음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정책까지도 미리 연구하여 그 결과를 다음 세대가 참고하도록 전달하여야 한다. 결국 인재양성이든 정책개발이든 멀리보고 이 시대만이 아니라 다음 시대까지를 배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식이다. 진정으로 훌륭한 지도자는 天下에 이익을 주는 데 끝지지 않고 萬古에 이익을 주어야 한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가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요즈음 지도자들 중에는 후사를 즉 뒤에 올 역사를 너무 외면하는 경향이 많다. 국가운영의 시간적 공간적 지평(horizon))이 너무 짧다. 이것을 훌륭한 지도자가 아니다.

 

다음 요구되는 덕목은 回向이다. 지도자는 자신이 성취한 국가발전과 안민의 功과 명예를 자신이 가져서는 안 된다. 모두를 함께한 팀의 구성원(현신)과 국민들에게 돌려야 한다. 그리고 오늘이 있게 한 지금까지의 과거 역사의 주역들에게도 그 공을 돌려야 한다. 한마디로 모든 자신의 성취와 그 영광을 국민과 역사에 돌려야 한다. 그리고 실패와 반성의 책임은 자신만이 가지고 가야 한다. 이것이 역사의식이다.

 

지도자는 역사에 큰 기여를 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여야 한다. 그 결과와 성과를 나누는데 참여할 생각을 하여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일이 끝나면 빈손으로 가야 한다. 空手來하였으니 空手去하여야 한다. 힌 눈이 내리는 밤 표표히 떠나야 한다.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야 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캄캄한 밤이지만 돌아가는 길도 똑 바르게 걸어야 한다. 오랑캐처럼 지그재그로 걸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 길 잃은 뒤에 오는 사람이 내 발자국을 보며 자신의 길을 찾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역사의식이고 진정한 애민정신이고 천하위공의 마음이다.

 

 

5: 맺는 말

 

조선조 500년 동안에 선비의 修養學에서는 많은 발전이 있었으나 선비의 經世學에서는 큰 발전이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조선조 시대 주기적으로 일어났던 士禍--1498년의 무오사화 1504년의 갑자사회 1519 년의 기묘사화 1545년의 을사사화 1547년의 정미사화 1722년의 심임사화 등 등---가 선비들을 크게 위축시켰다고 볼 수 있다. 사화가 일어나면 선비의 일부는 죽음을 당하고 나머지 선비들은 낙향하여 침묵하면서 후학을 가르쳤다. 그 때 후학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이 정치적으로 국가경영에 대한 내용--안민학이나 경세학---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조선조 시대 많은 문집은 대부분이 4단칠정론, 일기이원론, 이기일원론 등등의 인간 본성과 수양학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었다. 그리고 국가경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한 주장이나 교육은 스스로 피하였다. 맹자를 읽는 것도 피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心性學 수양학은 발전하였는데 경세학 지도자학에서는 큰 발전이 없었다. 조선 개국 시 정도전의 경국대전 등과 이율곡의 성학집요 동호문답 만언봉사 그리고 선조에 대한 몇 가지 정책건의문(진시폐소, 등등) 그리고 정다산의 목민심서 경세유포 탕론 등이 돋보이는 경세학적 결과물이 아닐까? 필자의 과문의 소치일 수도 있다. 여하튼 확실한 것은 인성과 수양에 대한 논의 보다 경세에 논의는 적었던 것은 확실하다.

 

경세학과 지도자학을 직접 논하는 것을 선비들이 스스로 피한 점도 있지만 설사 자신의 주장을 집필하는 용기있는 선비가 있다고 하여도 그 글이 당내나 후대에 전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정다산 선생도 牧民心書를 쓰면서 선비의 일은 修己(修養)가 半이고 牧民(安民 혹은 經世)이 半인데 목민에 대한 책은 대부분 거의 전해오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 내 책인들 어찌 전해질 수 있으랴” 하고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설사 이 책이 당대냐 후대에 전해지지 못해도 나 자신의 덕을 쌓기 위하여 책을 쓴다고 스스로를 위로 하고 있다. 목민과 경세를 생각하는 선비들에게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참담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해방 후 서양의 사회과학 학문이 물밀듯이 들어 왔으나 아직은 수입단계가 아닐까 생각하다. 서양의 국가정책이론과 우리의 국가정책현장을 묶는 그래서 한국이 나갈 방향과 전략을 제대로 제시하는 한국적 사회과학, 한국적 국가경영학, 한국적 경세학은 아직 나오지 않는 것 같다. scholar와 practitioner 사이의 거리가 아직은 너무 멀다. 전직 장차관이 나와서 자신의 정책경험을 책이나 논문으로 정리하는 일들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학자출신의 장차관들이 공직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와 자신의 정책경험을 글로 정리하고 반성하는 일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한 현장의 지혜와 경험이 축적되고 이론적으로 정리되어야 한국적 국가경영학 한국적 경세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런 방향으로의 일부 움직임도 있으나 아직은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

 

언제가 이 문제를 우리가 풀어야 한다. <理論과 實務>의 gap을 줄여야 한다. <修養과 經世의 gap>을 줄여야 한다. 그래서 양자를 융합하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에서 올바른 경세학, 지도자학이 나올 수 있고 더 나아가 우리가 사상적 자주국가 이론적 독립국가가 될 수 있다. 아니 그래야 우리가 성공하는 국가를 만들 수 있다. 한국적 이론없이 한국적 성공이 있을 수 있을까? 이제는 더 이상 외국의 이론을 受信만 하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이론을 發信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정신자본이 우리의 사상자본이 우리의 이론자본이 세계발신의 수준이 될 때, 우리 한반도는 오랜 <변방의 역사>를 끝낼 수 있다. 그리고 선진통일에 성공하고 세계중심국가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인류의 보편적 발전에 기여 하는 자랑스러운 세계기여국가, 세계모범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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